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의 시인, 극작가, 소설과가, 과학자, 정치가, 연극감독, 평론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연극, 시, 문학, 미적 비평뿐만 아니라 식물학, 해부학, 색채에 관한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로 널리 평가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18C후반 현재까지 서양문학, 정치, 철학 사상에 깊고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1775년 11월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성공으로 바이마르에 거처를 마련했다. 1782년 칼 아우구스트의 색세 바이마르 공작으로 운명했다. 그는 스타문도란 문학운동의 초기 참가자였다. 바이마르에서의 첫 10년간 공작의 추밀원(1776-1785)의 멤버가 되어 전쟁과 고속도로위원회에 출석해, 인근의 일메나우에서 은광의 재개를 감독하고, 제나 대학에서의 일련의 행정 개혁을 실시했다. 그는 또한 바이마르의 식물 공원 계획과 두카르 궁전 재건에도 기여했다.
괴테의 첫 번째 주요 과학작품은 <식물의 변용>은 1788년 이탈리아를 방문한 후 출판되었다. 1791년 바이마르 극장 감독으로 취임했고 1794년 극작가, 역사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쉴러와 친분을 쌓았고 1805년 쉴러가 사망할때까지 초연했다. 얼마 전 괴테는 두 번째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제자>를 출간했고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그리고 1808년에는 가장 유명한 드라마 파우스트의 1부를 출간했다. 1790년 내내 쉴라, 요한 고틀리브 휘테, 요한 고트프리트 헬더, 알렉산더 폰훔보르, 빌헬름 폰 훔볼트, 아우구스트와 프리드리히 슈뢰겔의 대화와 다양한 사업은 바이마르 고전주의로 총칭되었다.
독일 철학자 아서 쇼펜하우어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제자>를 지금까지 쓰여진 4대 소설 중 하나라고 이름 지었다. 한편 미국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랄프 왈드 에머슨은 동명의 작품(플라톤, 엠마뉴엘 스웨덴 보르그, 몬테뉴, 셰익스피어, 나폴레옹과 함께)에서 괴테를 6명의 대표적인 남자 중 하나로 꼽았다. 괴테의 코멘트와 관찰은 몇몇 전기적 작품, 특히 요한,피터,에커먼의 <괴테와의 대화>(1836)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의 시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베를리 오즈, 리스트, 바그너, 말러를 포함한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음악으로 설정되었다.
그의 생애 (초기)
괴테의 아버지 요한 캐스퍼 괴테(Johann Caspar Goethe)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자유제국 도시였던 프랑크프루트에 있는 큰 집(오늘날 괴테의 하우스)에서 가족과 살았다. 요한 캐스퍼는 라이프치히에서 법을 배우고 제국 의회 의원으로 임명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시 공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나이 38세, 1748년 8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괴테의 어머니 카탈리나 엘리자벳 텍스토르(17세)와 결혼했다. 요한 볼프강과 그의 여동생 코르넬리아 프리데리아 크리스타(1750)을 제외하고 그의 아이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젊은 괴테는 아버지와 개인교사로부터 그 당시 다들 그러했듯 언어(라틴어, 그리스어, 성경 히브리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수업을 받았다. 괴테는 댄스, 승마, 펜싱 레슨도 받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야망에 좌절감을 느껴왔었고, 자신의 아이들은 그가 놓친 모든 이점을 가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괴테의 가장 큰 관심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만 곧 문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프리드리히 고틀리브 크롭스톡(1724-1803)과 호머는 그가 초기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연극에도 열심이어서 매년 집에서 열리는 인형극에 크게 매료되었고 후에 문학작품 <빌헬름 마이스터의 제자>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된다.
그는 역사와 종료에 관한 작품을 읽는 것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 이 시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항상 책의 시작과 내용 분할해 암기하는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다섯 권짜리 책 초반, 그리고 다음에 아이네이드와 오비의 변신을 말이죠. 만약 이야기 속에서 늘 활발한 상상력이 나를 이리저리 이끌고 우화화 역사, 신화와 종교가 뒤섞여 나를 현혹시키겠다고 위협한다면, 나는 냉큼 동양의 지역들로 도망쳐 모세의 첫 번째 책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양치기 부족들 사이에서 최대의 고독과 최대의 사회 속의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원문 : I had from childhood the singular habit of always learning by heart the beginnings of books, and the divisions of a work, first of the five books of Moses, and then of the Aeneid and Ovid's Metamorphoses.... If an ever active imagination, of which that tale may bear witness, led me hither and thither, if the medley of fable and history, mythology and religion, threatened to bewilder me, I readily fled to those oriental regions, and plunged into the first books of Moses, and there, amid the scattered shepherd tribes, found myself at once in the greatest solitude and the greatest society.
출처: Johann Wolfgang von Goethe - Wikipedia
..... 2에 계속